방문의료이야기

아모르파티

사의련 2023. 6. 12. 15:05

'선생님, 우리 엄마가 언제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는지 아세요?‘

언젠데요? 보호자분 낳았을 때 였어요?

아뇨, 58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셨어요. 그해 아빠가 돌아 가셨거든요

 

굽이 굽이 오르막 도로를 운전해서 산을 넘어가면 산속에 넓게 평지가 펼쳐진 마을이 나온다. 박 여사는 그 마을에 시집와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녀의 남편은 주사가 심했다. 약주라도 한잔 걸치고 오는 날이면, 모든 가족이 공포에 떨어야 했고, 친척집이나 지인집에 숨어서 하루 밤을 보내야 했다. 하루는 가족들이 도망을 가다 막내가 아버지한테 잡혀서 밤새 몽둥이를 맞았는데, 다행이 죽지 않았고, 장애가 남을 가봐 노심초사 했는데 괜찮았다는 이야기로 봐서 가정폭력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식이 죽을 만큼 맞는 것을 보는 어미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었고, 그 분노를 마음속에 삭히면서 같은 집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인생이었을까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58세였다. 그전에는 증오의 대상과 불안 속에서 동거를 했었을 것이고, 홀로된 뒤에 잠깐의 해방감이 있었겠지만, 그 이후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시골마을의 외부 시선,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다가 왔을 것이다.

 

박 여사는 방문진료를 시작하고 세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살던 집에 방문 후 감기에 걸려 기력이 없고 식사를 하지 못해 신체기능이 극도로 저하 되었고, 두 번째는 추운날씨에 가출 후 길을 잃고 아파트 계단에서 3시간 동안 떨고 나서 저체온증으로 청색증이 왔을 때 였다. 세 번째는 의식저하와 함께 눈이 돌아가고 항문출혈이 생겼을 때였다.

3회 모두 입원과 재택치료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재택에서 잘 치료되어 입원치료 없이 고비를 넘겼다. 치료 과정에서 새벽응급방문과 야간응급방문이 이루어 졌으며, 방문의료진과 보호자는 상시 정보를 교환하였다.

 

박 여사는 중증 치매 환자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살던 집으로 가기 위해 하루 종일 짐을 싼다. 피해의식이 강하며, 보상심리가 높은 편이다. 하루 종일 걱정을 하며, 욕을 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여,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다. 우울증이 있어,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아파트에서 뛰어 내린다고 말을 하고 실제 미수에 그친 적도 있었다.

수년전부터 청각장애로 듣지 못하며, 가족과의 의사소통은 몸동작이나, 입모양 등으로 몇가지 단어만 알아 듣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입원을 할 경우 보호자가 24시간 간병해야 하며, 요양병원등의 시설 입소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대한민국은 늙어가고 있으며, 치매환자 또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65세이상 노인인구는 약 1300만명이며, 이중 약100만명 정도가 치매환자이다. 20년 후(2040)에는 약 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거제시 재택의료센터에 등록된 대상자 또한 과반수 이상이 치매 확진 환자이다.

치매는 초기에 가족들이 인지 못해 진단을 놓치는 경우가 많으며, 진단 후에도 진행이 계속된다. 치매 환자의 경우 삶의 질이 낮으며, 가족들의 삶의 질 저하와 감정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박여사의 따님같이 중증 치매 환자와 동거를 하는 경우, 서로에게 매우 힘든 삶이 된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함께 했던 과거의 아픔들, 그리고, 치매라는 현실이 마음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의 척도가 0~100까지이고,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중간이 50이라고 가정 하였을 때, 나는 45의 행복을 추구한다. 예전에는 70 이상, 혹은 100의 행복 심지어는 100을 넘는 행복을 추구하였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은 30도 안되는 행복도에 살고 있었다. 나의 현실보다 더 과도한 행복에 대한 노력은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했다.

나의 행복에 45는 만점이 되는 점수이며, 45의 행복도를 얻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시기에 따라 추구하는 행복도는 40이 되기도 하고, 60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은, 너무 높은 점수를 추구하면 어느 순간 바닥에 추락한 나를 발견하게 되고, 너무 낮은 점수를 추구하면 우울감등에 사로잡혀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 속을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현실에 맞지 않게 너무 높게 잡은 직업적 성취를 원했을 때와,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을 때가 그런 경우였다.

 

한의학에서는 희노애락비공경(喜怒哀樂悲恐驚)7가지 감정의 균형을 본다. 기쁨, 성냄, 슬픔(감정적인 슬픔), 즐거움, 슬픔(마음속의 내면적 슬픔-자기 부정등), 두려움, 놀람등의 감정이다.

행복은 이런 감정들 속에서 나오는 만족감이며, 적당한 감정들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행복만큼 느끼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긍정적인 감정들은 고요히 마음속에 간직하며 한번씩 꺼내 보면 좋을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충분히 느낀 후에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빠져나오면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즐거움이나 기쁨만을 추구하게 되면,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더 큰 내면적인 슬픔에 빠질 수 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Love of Fate) 운명을 사랑하라!

나의 운명에 대한 사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정폭력이나 치매등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해 부정적인 사건들로 얼룩진 삶일지라도, 그 삶이 나에게서 충분히 사랑받는 인생이라면, 고단했더라도 분명 행복한 삶이라 생각된다.

 

2023520
거제시 재택의료센터

동방신통부부한의원 원장 방호열

 

거제시 남부면 방문진료 가는 길 전경- 한 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 왕복 2시간 운전해야 하지만 이런 풍경이 위안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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