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의료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사의련 2023. 6. 27. 15:33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각기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현재 거주하는 일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또 어떤 이 에게는 그저 기억에도 없는 스쳐간 장소이다.

나는 산골에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통학이 불가능하여 그 시기부터 자취를 시작하였고, 결혼 전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매주 고향을 방문하였으며, 그 뒤로도 시간이 허락하면 자주 방문하였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산소와 감나무밭, 빈집을 관리 하며서 휴식도 취할 겸,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고 있다.

나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향기로 다가온다. 운전을 하다 아카시아 향이 나면, 지천에 아카시아 꽃이 피고, 아버지를 도와 꿀을 따던 고향이 생각난다. 어릴 적 군불 냄새가 좋아, 요즘도 고향에 가면 마당에 불을 지피고, 불멍을 하면서 별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재택의료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상자의 지역사회계속거주(AIP, Aging in Place)가 목적이다. ‘지역사회계속거주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지금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집마당이 지역사회인 사람은 집마당, 안방이 지역사회인 사람은 안방을, 침대가 지역사회인 사람은 침대에서 거주하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시간은 가고, 시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지역사회는 집마당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침대로 좁아지게 되고,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재택에서 생애 말기를 보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재택의료센터는 의료와 돌봄을 통하여 이런 과정들을 최대한 지연 시키고, 가정에서 생의 말기 돌봄까지 진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예를 들어 욕창으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이 필요한 사람을 재택에서 치료하여, 집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재택의료센터의 주무대는 의료기관이 아니라 대상자의 집이다.

내가 평생 살았던, 혹은 말년부터 살기 시작한 집은 고향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면단위의 농어촌의 대상자들은 그 집에서 한평생을 보낸 분들이 대부분이다.

편안함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집보다 나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이분들이 집을 떠나게 된다면, 주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다. 물론 급성기 질병은 병원에서 치료 후 집으로 돌아오면 되지만, 요양을 위해 입소하게 되면 결국 그곳에서 생의 말기를 보내다 죽음을 맡이 하게 된다.

집과 요양병원, 요양원은 마음의 거리가 매우 멀다. 요양원에서 계약의사로 근무할 당시 많은 비율의 입소자들이 요양원에 오는지 모르고, ‘놀러 가자혹은 밥을 먹자는 말에 따라 나왔다가 입소하신 경우가 많았다. 그분들이 매일 집을 그리워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분명 여러 가지 상황으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재택에서 돌봄이 충분이 이루어진다면, 재택에서의 지역사회 거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부족함을 이야기해 준다.

 

사람은 집에 머물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해결과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하다. 장기요양 등급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저귀와 같은 조호물품이 공급되어야 하며, 충분한 영양섭취가 필요하며, 안정적으로 머물 장소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의료지원 등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들은 지속 가능하여야 한다. 이런 일들은 제도적인 부분이 뒷받침 되고, 여러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의 초등학교 중학교 의무교육처럼, 일정 기준 이상의 노인들에게 체계적인 통합 돌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듯 재택의료센터를 시작한지도 6개월이 지났다.

한의원에서 진행되는 외래 진료와 재택방문진료는 대상자의 질병 정도와 진료 공간, 진료 형태가 달라서, 연속된 근무라기 보다는 분리된 두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업무 적용과 환자 진료 등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6개월간 지역자원연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물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동차 조립공장 기계도 아닌데 매일 반복되는 같은 동작을 하고, 카세트도 아닌데 매일 같은 말을 해야 하고, 복사기도 아닌데 매일 같은 용어들을 타이핑 해야 하는 외래 진료실의 풍경들은 항상 탈출해야 할 속박으로 느끼고 산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의료, 보건직종 및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분들이 느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런데 방문진료를 하면서 대상자의 생로병사의 긴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외래진료가 그 분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생각들로 인해 과거의 지루했던 일상들이 현재의 고단한 나를 위로 하는 듯하다.

몸이 힘든 것은 사실 이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해진 느낌이다.

 

그래! 힘내자고 외쳐본다.

 

20230619

거제시 재택의료센터

동방신통부부한의원 원장 방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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