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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련, 건강한 일터와 더불어사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모임이 되길

사의련 2019. 10. 4. 12:07

[우리가 원하는 의료기관_5] '길벗한의원' 박재만 원장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이하 사의련)가 '공익성 높은 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활동을 소개한다. 다양한 활동과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의 모습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건강권을 향상하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 의료의 공공성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5회로 성남에 위치한 길벗한의원을 찾아가 바람직한 공공의료의 모습과 사의련이 만들어가야 할 가치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사의련 의료기관들은 사회적 기본권인 노동권을 지키는 현장이 됐으면 한다. 원장의 선의가 아닌 기관내 구조를 만들어 민주적인 운영의 틀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박재만 길벗한의원 원장은 의료기관내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정도라는 현실에서 절실한 부분이긴 하지만 개인사업자인 의원급 병원에서 노동조합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만든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작년 노동절 집회에 참여했다. 시급 1만원이 적힌 피켓을 들고 열심히 대국민홍보를 했죠. 집회가 끝나고 한의원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럼 우리 한의원은 시급이 그 정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계산해 봤죠. 안 되더군요. 너무 이율배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 원장은 다음날 직원들을 모아 놓고 어제 노동절 집회에서 나온 시급 1만원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한의원의 현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시급 1만원을 당장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5년 기한을 두고 점차 임금을 인상해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조를 만들어 볼 것을 권유하였다. 이후 직원들이 지역의 노동단체 활동가와 간담회는 했지만 아직까지 노조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박 원장은 "사의련이 공익성을 띠는 단체임을 표방하는데 무엇으로 그것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며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함을 강조했다. 사의련의 강령에는 '의료기관의 민주적 운영과 합리적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칙이 가장 먼저 올라 있다. 다만 내용으로 무엇을 채워야 할지에 대해선 많은 논의와 사례 발굴이 필요하다.
사의련이 출범하면서 해야 될 구체성에 대해 박 원장은 몇 가지를 덧붙였다. 그는 "예를 들어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이나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제너럴닥터스란 병원은 30분에 환자 한 명만 진료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루 8시간으로 따진다면 20명이 안 되는 것이다. 일본민의련도 차액병상료를 받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있다. 이런 행동지침이 병원의 수익을 줄이겠지만 사람들에게 공익과 신뢰를 주기에 매우 구체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의련도 사의련의 지향을 드러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이 있다면 그것이 참여동기도 되고 사회적 메시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2년 임기를 끝내고 1월31일 총회에서 후보등록해 다시 사무처장으로 선출됐다.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은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2015년 3월 전환된 것으로 '시민이 공공병원을 짓는 행동'에서 '시민이 주인되는 병원 운영'을 위한 활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공공병원은 시민의 세금으로 짓는다. 그런데 정치권력과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돼 이용자인 시민의 입장이 반영되질 못한다. 병원내에 시민위원회 같은 참여조직이 있지만 원장이 위원장을 겸임하고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원장의 임명으로 위원이 되는 구조에선 형식적인 기구밖에 안 된다." 박 원장은 성남시의료원이 공사중단 등의 사태를 겪으면서 차질 없이 개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산이나 인력배치 등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공공병원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남시의료원이 공공병원의 진면목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박 원장은 "대전, 울산, 화성, 부산 등 성남처럼 주민들이 나서 공공병원을 짓고자 하는 곳에서 간담회나 자료를 요청해 오고 있다며"며 "올해는 시민이 나서서 공공병원을 건립하는 여러 지역들을 네트워킹하는 일에 단체가 힘을 쏟을 예정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원장과 인터뷰 얼마 후인 1월 29일 울산에서는 보건의료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국립병원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공공병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한국사회에서 이런 공공병원의 확충은 우선 과제이다. 공공병원의 수도 중요하고 정부 차원의 재정지원도 중요하지만 공공의료에서 시민참여가 얼마나 이루어지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참여가 없는 공공의료, 공공병원은 정치권력에 따라 한순간에 밀려날 수 있다. 박 원장은 "공공의료에 대해 시민들은 많이 어려워한다. 시민들이 공공의료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보건소는 가난한 사람이나 어르신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병원을 공공병원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공공병원의 모습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며 "시민들이 공공의료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기초로 공공의료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한국의 공공의료도 많이 변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수익성과 별개로 호스피스병동을 확대하는 것,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상시인력을 직접고용하는 것, 메르스처럼 과밀사회의 전염병에 대비하는 것, 성남시의료원이 외래보다는 입원환자를 중심으로 운영해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것 등이 공공병원의 좋은 모습이다.

 

길벗한의원이 위치한 성남은 경제적인 지역불평등이 심한 곳이다. 인구의 52%가 거주하는 분당구와 48%의 수정, 중원구가 극명하게 나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당구에는 병원 등 의료시설이 많고 녹지 또한 풍부하다. 최근 소득, 교육, 환경의 불평등이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박 원장은 "성남을 두 군데로 나눠 봤을 때, 의료비는 비슷하다. 그런데 수정, 중원구의 내원 횟수가 더 많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정기적인 건강검진에 돈을 쓰는 데 반해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잔병치레부터 소소한 진료를 지속적으로 한다"며 "이런 사례로 보면 의료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가계소득, 학력, 녹지 등 환경문제, 일자리 등 건강불평등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소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불평등의 해소 차원에서 진행되는 '문재인케어' 대해, 박 원장은 "암부터무상의료운동이란 것이 있었다. 보험 급여 확대로 암환자에게 도움이 됐지만 재벌병원을 엄청나게 키워 준 면도 있었다. 보험급여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병원 확충 등 구조를 잘 짜야 한다. 재정만을 중시하면 공급자의 배만 불릴 수 있다. 문재인 케어가 뜻한 바를 이루려면 공공병원의 비중을 더 높이고 공급자에 대한 규제가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한의사 박재만이 생각하는 환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상대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관계맺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의원에 오는 분들을 ‘환자’라고 부르기 보다 다른 호칭을 쓰고 싶다. 환자 이전에 그들은 지역주민이고 우리 이웃들이다. 사의련이 지역사회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도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알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