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주치의가 된다는 게 무엇일지 소아과 의사되고 늘 화두였지만 그 동안엔 입퇴원 너머의 아이들과 가정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퇴원 후 다니던 동네의원에 가시도록 병력을 잘 정리해 드리는 정도였다.
이제 내가 그 동네의원 주치의가 되었다. 질병의 시작. 아주 가벼운 불편함과 증상들로 찾아온 아이부터 좀 더 심해진 아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하루가 펼쳐진다. 더불어 아이를 데려온 가정마다의 등장인물과 사연들까지 두루 담겨온다. 이미 진행된 증상에 대해 입원여부를 결정해 주고 약과 주사 위주로 질병을 치료하던 행위에서 지금은 약이 꼭 필요한지, 다른 접근이 필요한 건 아닌지, 왜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지 바라봐야 할 시야와 깊이가 달라졌다.
문제는 그렇게 마냥 깊어지기에 진료실이란 공간과 진료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의원 내 일부 공간을 내어 지역 청년, 아이들, 양육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현안을 내어놓고 논의하고 대책을 꾸려가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문학 강좌, 양육자 아이간의 비폭력대화 강좌,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 그림심리치료, 여성의전화 오프라인 상담소, 놀이치료 강좌 등이다. 아동학대 예방과 학대피해 아동보호를 위한 활동에는 평일 휴진시간을 내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한다.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마당을 펴고 도움을 청하고 우선 재미있게 놀면서 기획하면서 머리를 맞대니 사람들이 저마다의 재능으로 결합한다. 동네 주민자치회의 예산지원이나 지역 사회적기업의 도움과 가르침, 그림치료 선생님의 헌신적인 상담으로 휠체어 탄 분들의 참여 후 뿌듯해 하시는 모습도, 어두웠던 아이들과 엄마들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지나가던 따스한 안도의 빛도 감사한 기억이다.
시흥시의사회에 아동보호위원회가 생기고 지역 1차 의료기관의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연대해 학대사례에 의료자문을 한다.
1차의료가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란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형평성 있게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것일테다. 그러기 위해 자꾸만 접점을 찾아내고 여러 부분에서 이웃들과 손을 잡는다. 손과 손이 만나 든든한 띠가 만들어지는 것을 뭉클하게 보았다.
이러한 의료를 고민하는 의료기관들의 연합체.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가 이번주 일요일(10월 20일)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1차 사의련 학술대회를 연다. 그간의 여러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지역주민들과 연대하고자 했던 활동들의 종합박람회라고 보면 되겠다.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고 했던 독일의사 루돌프 비르효의 신념을 기억한다. 사의련은 의료기관연합회지만, 이 뜻에 함께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후원회원으로도 함께하실 수 있다.
_김정은 원장(김정은소아청소년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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